가슴으로 부르는 불심의 노래

작사 - 대원 문재현 선사 / 작곡 - 배신영 / 보컬 - 홍노경, 채연희 / 제작 - 정맥선원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끔 신심, 발심을 북돋아 주는 곡으로부터 수행의 길로 접어든 이의 구도의 몸부림이 담겨있는 곡, 대승의 원력을 발해서 교화하는 보살의 자비심과 함게 낙원세계를 누리는 풍류를 그려놓은 곡까지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생생하여 그 뜻이 뼛속 깊이 새겨지고 그 멋에 흠뻑 취하게 된다.

거칠고 말초적인 요즘의 노래를 대신해 이러한 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는, 수행의 마음을 진작시킬 수 있는 노래들을 모아두었다.

불교 8대 선언문

불교 8대 선언문
1. 불교는 자신에게서 영생을 발견하게 한 유일한 종교이다.
2. 불교는 자신에게서 모든 지혜를 발견하게 한 유일한 종교이다.
3. 불교는 자신에게서 모든 능력을 발견하게 한 유일한 종교이다.
4. 불교는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이루게 한 유일한 종교이다.
5. 불교는 자신에게서 극락을 발견하게 한 유일한 종교이다.
6. 불교는 깨달으면 차별 없어 평등하다는 유일한 종교이다.
7. 불교는 모든 억압 없이 자신감을 갖게 한 유일한 종교이다.
8. 불교는 그러므로 온 누리에 영원할 만인의 종교이다.
– 대원 문재현 전법선사 주창

선방의 수행자들에게

선방의 수행자라면, 우선 불법의 첫째가는 도리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간화선을 하는 이라면 화두를 참구하는 그것이, 염불선을 하는 이라면 염불하는 마음 그것이 용광로가 되어서 다른 인생관이나 잡념은 용광로의 한 점 눈처럼 발붙일 수 없어야 한다.

이 한 몸, 이 인생조차 이슬과 같이 여겨 따로 보는 마음이 없어야 하거늘, 근간에는 승려들까지 돈과 명예로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설사 불법의 첫째가는 도리인 깨달음을 성취했다 해도 그것은 공부의 끝이아니다. 오후보림을 통해 업을 다해야만 누진통을 이루어 육신통을 자재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일상에 육신통을 자재하는 구경 본분의 경지일 때 비로소 공부를 마쳤다 할 것이다. 그런데 제방의 선방 사정을 보자면 이런 무궁무진한 공부는 그만두고 목적지에 이르는 길도 몰라 노정길을 묻고 있는 격이다. 무자와 이뭐꼬 화두가 최고라 하면서도 실제 실참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엇인고?' 하면서 이 눈으로 보려 한다면 경계 위에서 찾는 것이어서 억만 겁을 두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깨달아 일체종지를 이룬 스승의 분명한 안목의 지도가 없다면 화두를 들든, 관법을 행하든, 염불을 하든 깨달음을 기약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할 것이다.

또하나, 선을 하는 분들이 기도나 염불 등 다른 수행방법을 무시하거나, 계행을 가볍게 여기고, 불보살님에 대한 신심이 없이 마치 아만이 선 수행인의 바람직한 기질인 양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을 바로 안다면 모든 수행법은 오히려 선으로 통한다. 인연과 근기에 맞는 수행법으로 수행하고 지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선을 한다 하여 막행막식하며 계행을 어기기를 밥먹듯 한다면 이는 수행자라 할 수도 없다. 또한 불보살님에 대한 신심을 가볍게 여긴다면 수수억겁동안 익힌 습과 인연의 마장이 크게 닥칠 때 스스로의 선정과 지혜로 감당하지 못하여 쉽게 퇴전하게 될 것이다. 물론 상으로 숭배하고 기복에 치우쳐 묶이는 것은 정법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신심의 불꽃이 꺼진다면 그것은 곧 퇴전이다. 내면의 아만이 녹아내릴 때 비로소 신심의 불이 타오르고, 신심의 불이 타오를 때 법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불보살님과 선지식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지고 더불어 세상 모든 것이 다 감사해서, 남을 위한 대보살심을 내게 된다.이러할 때 어찌 불상이 상이겠는가. 다기물 한번 올리는 것, 촛대 한번 닦는 것도 정성을 다하게 된다. 이러한 지극한 마음, 지극한 신심으로 일거수일투족을 할 때 이 법을 듣는데 있어서야 어떻겠는가? 공부에 있어서도 역시 성불의 길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퇴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초발심자경문 77-79페이지, 문젠프레스